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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외여행

블라디보스톡 여행

by 비와몽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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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겨울 여행 

 

2019년 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

러시아는 1월초에 장기간 연휴라는 소리를 듣고 급하게 친구가 있는 

블라디보스톡으로 GoGo

블라디스보스톡 사전에 미리 잘 예약하면 왕복 15~20만원으로 항공권 구매 할수 있다고 하네요 .

급하게 떠난 블라디보스톡^^

블라디보스톡 공항

블라디보스톡 도착시간 새벽 02:30분 전후 

이시간에는 블라디보스특 시내로 가는 전철은 없고 택시 밖에 

전 다행히 친구가 픽업을 나와 줘서 이시간 도착 항공으로 ....

독수리 전망대 앞 교차료
독수리 전망대 야경 

공항 도착후 새벽4시에 독수리 전망대로 야경보러 GoGo

현지인이 있기에 이시간에 올라가지 .춥기도 무척 추웠고 사람도 하나도 없고 ,나름 정말 운치 있었다는...

독수리 전망대 입구 근처 모노레일
모노레일 타고 아래의 해상공원으로  
해상공원에서 찍은 다리 풍경
바다가 얼었어요 헐
바다가 얼었어요 

바다가 얼었는데 막상 이날의 체감은 그리 춥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설레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바람이 불때는 ....

루스키 섬
루스키섬 끝자가락

루스키섬에 주차를 하고 위 사진의 곳까지 걸어가는데 정말 춥고 시간도 대략 30~40분 걸어갔다 

쉽게 생각했는데 좀 빡씨였던 기억이 가물 가물 

힘들었던 기억도 잠시 직접 보는풍경을 정말 아름다웠다 

핸드폰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러시아어로 ‘동방 정복’이란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토크는 이름부터가 러시아의 ‘동진(東進)’을 반영한 
근대 도시다. 러시아인들이 1856년에 ‘발견’한 이 도시는 애초부터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위한 
교역 항구를 겸한 군항으로 개항되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점이 되었다.

러시아의 ‘동진’ 이전에는 중국 청나라 길림부도통(吉林副都統)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러시아와 
영토분쟁이 일어나자 중국은 1860년 불평등한 ‘베이징조약’을 맺고, 이곳을 포함한 우수리(Ussuri)강 
이동 지역의 약 40만km2의 넓은 땅을 러시아에 내주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하면서 자그마한 어촌이던 이곳을 일약 시로 승격시켰으며, 점차 연해주 지방의 행정 
중심 도시로 키워나갔다.이즈음부터 극동 시베리아에 대한 한인들의 이주사가 시작되었다. 
1863년 인접한 함경북도의 13호 농가가 노브고로드(Novgorod)만으로 이주한 것이 그 효시다. 
반세기가 좀 지나서는 그 수가 20만 명을 넘어섰으며, 연해주 지역에 한인사회가 형성되어갔다. 
이주 한인들은 남다른 근면성과 강인성으로 온갖 환난을 이겨내면서 불모의 땅을 개척해나갔다.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극동 시베리아는 한때 한(韓)민족의 
정통국가인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가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주변의 니콜라예프카(Nikolaevka)나 
고르바트카(Gorbatka) 등 발해 성터에서 출토된 8~10세기의 숱한 유물들이 이것을 실증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280km 떨어진 노보고르데예프카(Novogordeyevka) 성터에서는 온돌을 
비롯한 여러가지 발해 유물과 더불어 8세기경에 주조한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의 은화가 
발견되었다. 이 은화의 보관자인 러시아의 샤프쿠노프(E. V. Shavkunov)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소그디아나)에서 8세기경에 주조한 이 은화는 교역수단으로 쓰인 
것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당시 발해의 특산물이었던 초피(貂皮, 담비 가죽)를 중앙아시아 
상인들이 은화를 주고 구입해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추단과 더불어 중간지점 격인 치타(Chita)에서 등자(鐙子) 같은 고구려 유물과 동 · 
서문물이 동시에 발견된 점 등을 감안해, 샤프쿠노프 박사는 사마르칸트—치타—발해 
상경(上京)—연해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제2 동아시아 교역로’, 즉 ‘초피로(담비로)’의 가설을 
제시하였다. 이 길은 발해 국제 5도의 하나인 거란도(契丹道)와 일치하고 있다.[출처:실크로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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