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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태안 여행]신두리 해안사구

by 비와몽 202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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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여행]신두리 해안사구

 

태안으로 캠핑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려 보았던 신두리 해안 사구 

신두리 해안사구 

잘 정돈 되어 있고 산책하기좋은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람에 따라 올라온 해변의 모래들이 사막같은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사진찍지 좋은 장소로 추천하고 싶네요 

산책도 좋고 이제 막 알아가는 연인들에게 데이트 코스로 딱이라 생각이 드네요 

산책코스가 잘되어 있슴

가볍게 산책과 바람쐬러 갈만한 신두리 해안사구 



국내 최대 규모의 사구지역
해안사구는 조류와 연안류에 실려 온 모래가 파랑에 밀려 사빈으로 올라온 뒤, 바람에 날려 
그 배후에 운반퇴적되어 형성된 해안지형이다. 파랑과 바람의 작용이 탁월한 모래해안에서는 
비치와 해안사구가 서로 결부되어 발달한다. 해안사구에 모래를 공급하는 비치는 조차에 의해 
파랑의 작용이 활발한 해안에, 모래펄은 파랑에 의해 조류의 작용이 더 활발한 해안에 각각 형성된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해안사구는 주변의 기복과 연안류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달한다.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많은 모래가 쌓여 넓고 평평한 땅을 두껍게 덮고 있는 사구원(dune field), 
비치와 충적지 사이에 1열로 형성된 사구열(beach ridge), 사취(spit)가 성장하여 형성된 사구 등이 있다.

우리나라 도서지방을 제외한 육지부의 사구 가운데서 자연환경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곳이 
신두리 해안사구이다. 신두리 사구는 길이 약 3.4㎞, 폭은 약 200m에서 최대 1.3㎞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사구의 표면은 대부분 사초로 덮여 있으나, 육지 쪽으로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해안 가까이에서는 해당화도 자란다.

신두리에 해안사구의 발달이 현저한 이유는 그곳이 사구형성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균(2001)과 서종철(2001)은 신두리에 대규모 해안사구가 발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신두리 해안은 겨울철에 모래를 운반할 수 있는 탁월풍인 북서 계절풍이 해안에 직각방향으로 
불어올 수 있는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해빈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쌓이는데 유리하다. 
둘째, 해저지형 경사가 완만하여 파랑이 접근할 때 쇄파대(break zone)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형성될 수 있어 해빈 퇴적물이 쉽게 운반될 수 있다. 
셋째, 밀물과 썰물의 조차가 커서 썰물 때 완만한 경사의 해빈이 넓게 노출되어 바람에 의해 모래가 
쉽게 운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두리 근해의 해저에는 조류성 사퇴(sand bank)인 대규모 장안퇴가 분포하고 있어서, 
강한 폭풍이 불 때 파랑에 의해 사퇴가 침식되어 해빈에 지속적으로 모래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안사구가 지닌 환경적 가치와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하여 2001년 11월 신두리 해안사구의 
북쪽 지역 일부를 천연기념물 제431호(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로 지정했다. 
또한 환경부는 2002년에 배후습지인 두웅습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다.

해안사구의 형성시기
신두리 해안사구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해안사구의 지형변화와 퇴적물 수지, 자연적이거나 
인위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 경관변화, 해안사구의 관리방안 등에 관한 것으로, 
신두리 해안사구의 형성시기와 관련된 논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신두리 해안사구에 대한 절대연대 측정에 관한 연구가 수행되면서 그 형성시기가 밝혀지고 있다.

신두리 사구는 현생(現生)사구와 그 하부에 놓인 고(古)사구로 구분되는데, Kennedy 등(2004)은 
현생 사구에 관한 OSL 연대측정법을 통해 현생사구의 퇴적물이 500~600년 전에 형성되었음을 
밝혔다. 특히, 사구사의 집적율이 연간 2.5㎝ 정도로서 해안사구로서는 퇴적이 비교적 느린 편으로 보았다. 
이들 퇴적물들은 수중 환경에서 쌓인 후 바람에 의해 재운반되어 퇴적된 것이다.

하부의 고사구에 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플라이스토세에 형성되었다는 주장으로서, 
최후간빙기에 형성된 사구층으로 최종빙기에 주빙하 환경에 노출되어 형성된 주빙하 결빙 구조를 
그 증거로 들고 있다. 두 번째는 특별한 증거물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최종빙기가 끝난 홀로세 초기 
또는 고해면기에 형성되었다는 주장이다.

서종철(2005)은 신두리 해안사구지대의 중앙부에서 고사구층으로 판단되는 퇴적물에 대해 OSL 연대측정 결과, 
최하부 3m 지점의 사구사 퇴적층은 대략 680~730년 전으로 추정하였으며, 1.5m 지점은 약 480~61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1.2~1.3m 깊이의 암갈색의 일명 고사구 퇴적층을 사이에 두고, 1m 지점의 퇴적층에서는 
약 123~151년 전이라는 연대가 산출되었다. 이 결과는 고사구층으로 판단되는 퇴적층이 적어도 300년 이상의 
토양화작용을 받았음을 의미하며, 또한 지금까지 고사구층이라고 알려졌던 퇴적층의 형성연대가 지난 1,000년 
이후의 짧은 시기, 즉 플라이스토세의 최후간빙기나 홀로세 초기라고 지칭되었던 시기보다도 훨씬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하였다.[출처:네이버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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