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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외여행

대만 여행 (대만 북부 여행)

by 비와몽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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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자유여행을 생각하다가 아들이 어렸고 걷는거를 너무 싫어해서 

패키지로 가본 대만 

패키지 너무 빡시다는 것을 느꼈다 .대만 북부의 관광지는 다 돌아본 느낌 

개인적으로 맛집 찾아다니고 한곳을 보더라도 천천히 감상하고 

좋은 면 같은 곳 두번가는 그런 여유로운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패키지가 너무 힘들었다 

장점이라고는 어디갈지 고민안해도 되고 

움직이는 교통수단 걱정안해도 되고 

뭘먹을지 걱정안해도 되지만 

이런걸 포기 하고서라도 난 자유여행을 좋아한다 

 

국립고궁 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대표 배추 조각상

인간적으로 패키지라 갔지만 굳이 가볼것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타 

정말 자유여행에 시간있고 할거 없을때라면 모르지만

스린야시장

나중에 알게된것인데 우리나라 패키지 여행객들만 가는 야시장이다 

자유여행및 현지인들은 많이 안간다고 한다 

우선은 외곽에 자리잡고 있어 

자유여행객들은 시내에 있는 야시장들을 이용한다고 한다 

시내주변에도 3~4개의 야시장이 있다 

그래도 패키지로 갔다면 이곳에서 이것저것 많이 드시길 추천 

화련 태로각 협곡
화련 태로각 협곡

차량으로 이동해서 중간중간 사진찍고 끝

계곡물은 석회석 지대라 맑지 않은것이 특징 회색이라고 할까?

협곡을 대형버스로 이동할때 아찔한 스릴.....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배경지 지우펀

개인적으로 대만 북부여행중 지우펀이랑 스펀이 인상깊게 남았다 

이곳은 만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곳으로 풍경이 정말 인상깊었다 

여기역시 잘 알려진 관광지라 가격은 다들 짐작하실듯

그래도 몇가지 유명한 음식들이 있으니 한번씩 드셔보는것도 

야류 해상공원
야류 해상공원

야류해상공원에 석상을 기념품으로 사왔는데 남녀 한쌍으로 되어 있는데....

어떤의미인지 까먹었다 .......한번쯤은 가볼만한곳

풍등 날리는 스펀

풍등을 날리는 스펀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며 우리가족도 풍들을 날렸다 ....

이곳역시 추천할만한 대만 북부 여행지중 한곳

이곳에 닭날개에 찰밥을 넣은것이 유명하다함

중정 기념당 

패키지로 갔다온 대만 북부 정말로 대만 북부 여행지는 짧은 기간 다 가본듯 

다음에는 자유여행으로 대만 시내 여행을 할 계획이다 

맛집도 찾아다니고 쇼핑도 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다 


3세기 중엽 중국의 삼국시대 때 심형(沈瑩)이 저술한 《임해수토지(臨海水土志)》에서는 타이완을 이주(夷州)로 
기록하고 있는데, 중국문헌 기록으로 거의 초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주라는 명칭을 두고 
타이완 섬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는 이견도 있다. 7세기 초 수(隋)나라 때부터 한족(漢族)이 타이완을 
정찰정략(偵察征略) 시도하였으며, 타이완을 유구(流求)라는 명칭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유구는 
현재의 오키나와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시에는 구분없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원(元)은 1360년 펑후섬[澎湖島]에 처음으로 순검사(巡檢司)라는 행정기관을 설치하였지만 타이완은
관할에 두지 않았다. 명대(明代)에 이르자 해상무역과 해적활동을 하는 한족의 정착이 늘어났고 동시에 
동방무역에 나선 서구의 열강도 타이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명나라는 타이완을 
행정 관할에 두지 않았고 원주민과 한족,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각자의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으며 
타이완을 통치하는 기구나 세력은 없었다.

1590년 동방무역을 위해 이곳 해역으로 진출한 포르투갈인이 타이완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포르모사(Formosa)라고 명명하였다. 1616년 일본인들이 대만을 점령하려다 풍랑으로 수천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가 타이완 남부에 정착하였는데 그들의 목적은 동방무역을 위한 
것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앞서 정착한 한족을 누르고, 이곳에 무역기지를 건설하였다. 1624년 
안핑[安平:臺南市]에 지란디아 성(Zeelandia castle)을 구축하였다. 타이완이 중국과 일본의 중계무역 
거점으로 전력적 가치가 높아지자 에스파냐도 1626년 지룽[基隆] 지방의 서랴오섬[社寮島]에 산살바도르성을 
쌓았다. 다시 3년 후에는 단수이항[淡水港]에 산토도밍고 성(Santo domingo castle)을 각각 축조하고 타이완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1642년에 에스파냐를 타이완에서 격퇴하고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1661년 명나라가 청에 패망하자 유신 정성공(鄭成功)이 부하를 이끌고 타이난[臺南]에 상륙하여 
지란디아성을 점령해서 네덜란드인을 항복시키고 타이완을 항청복명(抗淸復明)의 기지로 삼았다. 
1662년 정성공이 죽고 이후 아들 정경(鄭經)이 대만을 통치하면서 독립된 국가로서 체제와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1673년 청나라에서 삼번의 난이 일어난 틈을 이용해서 대륙으로 진격하여 푸젠성 
일대를 점령하기도 하였지만 1680년 하문에서 패하여 대만으로 다시 퇴각하였다. 정경이 중국 대륙 
진출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사망하자 대만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내분으로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1683년 6월 청(淸)이 타이완으로 진격하자 3번째 정(鄭)씨 왕인 정극상이 청나라에서 요구한 변발을 
받아들이고 항복하였다. 이로써 정(鄭)씨의 타이완 지배는 불과 3대, 22년으로 끝났다. 다음해인 
1684년 청은 타이완을 푸젠성에 예속시키고 타이난에 타이완부(府)를 설치하였다.

청나라는 1884년 프랑스와 청불전쟁(淸佛戰爭)이 일어나자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듬해 타이완을 
하나의 성(省)으로 격상시키고 순무(巡撫)를 파견했다. 그러나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타이완은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타이완 주민들은 타이완 순무이던 탕징쑹(唐景崧, 1841~1903)을 총통으로 추대하고 
타이완민주국(臺灣民主國)을 선포해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 했다. 5개월 동안 각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력항쟁을 벌였으나 패하면서 타이완민주국은 붕괴되었다. 타이완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1945년 10월 25일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나 새로 이주해온 외성인(外省人)과 원주민인 본성인(本省人) 사이의 갈등이 촉발되어 
1947년 2월 28일에는 ‘2·28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 1949년에는 중국공산당과의 내전(內戰)에 
패배한 국민당(國民黨)의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난징(南京)에 있던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를 
타이완의 타이베이(臺北) 시로 옮기면서 오늘날까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타이완은 최고기관인 국민대회 및 총통 아래 입법원(국회), 행정원(내각), 사법원, 고시원, 감찰원의 
5권분립제를 택하고 있다. 국민당 1당지배정치를 펴온 타이완 정부는 1949년 이래 계속 실시된 
계엄령을 1987년 7월 해제하였으며, 1988년 1월 13일 총통 장징궈[蔣經國]가 사망한 후 부총통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으로 취임하였다. 1989년 1월에는 복수정당제를 도입하였으며, 같은해 
12월의 입법원 선거에서 야당세력이 예상외의 의석수를 차지함으로써 집권 국민당에 타격을 주었다.

1991년에는 타이완 수비사령부를 해체하고 진먼섬 계엄을 종식하였으며, 1992년에는 사상경찰제 
및 타이완 경비사령부를 폐지하였다. 1993년 11월 최초의 지방선거를 실시, 1994년 7월 국민대회에서 
선출되던 총통직선제 개헌안 승인을 거쳐, 1996년 3월 총통 리덩후이가 최초의 직선총통이자 
제9대 총통으로 선출되었다. 2000년 3월 야당인 민진당(民進黨)의 후보 천수이볜[陳水扁]이 
롄잔을 꺾고 총통으로 선출되어 50년 이상 계속되어온 국민당 체제가 중단되었다. 2001년 12월 1일 
제5기 입법위원 선거 결과 민진당이 제1당으로 도약하였으며 그후 2004년 3월 20일 총통선거에서 
천수이볜 총통이 50.12%의 지지를 얻어 연임에 성공하였다. 이때 야당은 3월 19일의 천수이볜 
총통 피격 사건으로 국가안전체제가 발동되어 군인과 경찰의 투표권이 박탈당했다는 것을 이유로 
당선 및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최고법원에서 모두 기각 패소하였다.

2004년 12월 11일 실시된 제6대 입법위원 선거에서 야당(국민당, 신민당, 신당)이 입법원내 
과반수(113석) 이상을 확보함으로써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民進黨 89석, 國民黨 79석, 親民黨 34석, 
台聯 12석, 新黨 1석, 기타 10석)되고 이에 2005년 6월 7일 국민대회에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입법위원수 1/2 감축, 소선거구제 채택, 헌법 개정안의 국민투표 실시, 국민회의 해산 등 헌법 
개정 내용이 확정되었다. 국민대회는 동대회를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천수이볜 총통의 측근 
비리혐의로 국민당, 친민당 주도 하에 타이완 정치사상 최초로 총통파면안이 입법원에 제출되었으나 
2006년 6월 27일 부결되었다. 2008년 3월에는 마잉주[馬英九]가 제12대 총통에 당선되었으며, 
2016년 5월에는 차이잉원[蔡英文]이 타이완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취임하였다.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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